롯데 유격수, 잊을 수 없는 이름
지난 해 롯데의 새로운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하며 리그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던 내야수 전민재(29)는 시즌 초반 4할대 맹타로 규정타석에 진입, 타격 부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더니 오랜 기간 3할대 타율을 유지하면서 '3할 유격수' 탄생에 관심이 쏠렸다.

전민재의 기억 속 김민재
시즌 중반이었다. 전민재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롯데에서 3할 타율을 쳤던 유격수'가 주제로 나오자 대뜸 "김민재 코치님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아쉬움 속에 빛나는 기록
실제로 김민재 롯데 드림팀 총괄코치는 현역 시절이던 2001년 105경기 타율 .301 101안타 2홈런 37타점 6도루를 기록했는데 미세한 차이로 규정타석 진입에 실패, 롯데 최초 3할 타율 유격수로 역사에 이름을 새기지 못했다.

롯데를 대표하는 유격수, 김민재
그럼에도 전민재는 김민재 코치의 이름을 꺼냈다. "혹시 김민재 코치가 3할 타율을 쳤던 것을 알고 말한 것이냐"라는 취재진의 말에 전민재는 "그건 몰랐다. 다만 롯데의 유격수하니까 김민재 코치님이 생각났다"라고 답했다.

견실한 수비와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
이듬해부터 서서히 롯데 내야진의 한 자리를 파고든 김민재 코치는 견실한 수비력으로 1995년과 1999년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며 오랜 기간 롯데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극적인 결승타와 명승부
특히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연장 11회초 극적인 결승타를 터뜨리며 명승부의 마침표를 찍기도 했다.

FA를 통해 보여준 가치
마침내 2001년 '비공식'이었지만 생애 첫 3할 타율을 마크한 김민재 코치는 FA를 통해 SK로 이적했고 2003년 SK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며 팀 전력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평가받았다.

유격수, 팀 승리의 핵심
그만큼 내야 전체를 지휘하는 유격수라는 포지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 선수였다.
국가대표 활약과 은퇴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민재 코치는 2009시즌을 끝으로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했다.
롯데로 돌아온 김민재 코치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던 김민재 코치는 지난 2024년 친정 롯데로 돌아왔으나 개막 엔트리에서 이름이 빠져야 했다.
암 투병과 마지막 순간
김민재 코치는 암 투병 중에도 코치직을 내려놓지 않고 현장에서 후배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향년 53세. 한창 지도자로 그라운드를 누벼야 할 나이이지만 하늘은 야속했다.
영원히 기억될 김민재 코치
김민재 코치는 롯데, SK, 한화에서 한국시리즈를 경험하며 유격수로서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수비와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고,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암 투병 중에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의 헌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김민재 코치가 롯데에서 어떤 활약을 했나요?
A.김민재 코치는 롯데의 주전 유격수로 1995년과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뛰어난 수비와 리더십으로 팀의 핵심 선수였습니다.
Q.김민재 코치의 선수 시절 통산 기록은?
A.프로 통산 성적은 2113경기 타율 .247 1503안타 71홈런 607타점 174도루입니다.
Q.김민재 코치가 롯데 외에 어떤 팀에서 활약했나요?
A.김민재 코치는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에서도 활약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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