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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도 못 말린 '사표'…'대박 자리'만 골라 간 정상곤의 인생 전략

joeunday 2026. 1. 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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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그리고 운명

1976년, 스물 일곱의 정상곤 씨는 당시 최고의 대기업인 대우에 입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임파선 결핵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도 그는 회사에 헌신하며 엘리트 사원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대리 시절부터 김우중 회장의 눈에 띄어 부장 시절에는 친필 사인을 받아 인사 발령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대우 사장의 꿈을 꾸며 회사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다

정상곤 씨는 김우중 회장의 일본 비즈니스 미팅에서 회장 앞이라고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일본 측에 과감히 가격 협상을 제안했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미팅은 대성공으로 끝났고, 김 회장은 그를 칭찬하며 공을 치하했습니다. 과장, 차장, 부장 시절에도 김 회장의 뇌리에 박힐 만한 성과를 거두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선택

하지만 그의 엘리트 코스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임원 승진을 눈앞에 두고, 마흔 살의 나이에 부장 직급을 끝으로 사표를 던진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그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김 회장 역시 그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정상곤 씨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회사를 떠났습니다.

가족, 그리고 미래

정상곤 씨는 일본 현지법인 책임자로 발령받았지만, 두 아들의 미래를 위해 사표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출세보다 자녀들의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결정은 IMF 외환위기 속에서 대우 그룹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화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새로운 시작, 빛나는 성공

대우를 떠난 후, 정상곤 씨는 무역회사를 창업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일본 최고의 교육 컨설팅 그룹과 제휴하여 교육 사업으로 성공적인 전업을 이루었습니다. 베네세, NTT도모코, 가네보 등 유수의 기업에서 고문직을 역임하며 74세까지 급여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성공의 비결

정상곤 씨는 40세에 대기업을 나왔지만, 74세까지 화려한 커리어를 이어갔습니다그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도전을 통해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그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를 끊임없이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래 링크에서 그의 특별한 인맥 관리 노하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 정상곤의 삶을 통해 배우는 인생의 지혜

정상곤 씨의 삶은 우리에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위한 다양한 선택지와, 개인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삶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과감한 결단과 끊임없는 노력이 어떻게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정상곤 씨가 대우를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A.두 아들의 미래를 위해 일본 현지법인 책임자 발령을 포기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그의 결정은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결과였습니다.

 

Q.정상곤 씨가 대우 퇴사 후 어떻게 성공했나요?

A.무역회사 창업 후 교육 사업으로 전업하여 성공했습니다. 베네세, NTT도모코, 가네보 등 유수의 기업에서 고문직을 역임하며 74세까지 급여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Q.정상곤 씨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도전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잡고, 개인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삶의 태도가 성공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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