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중앙동은 100년의 세월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때는 교통과 교육의 중심지였던 여기가 어떻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리고 또 다시 되살리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더욱 발전했던 교통의 중심지
익산역에 발길을 디디면 중앙동의 넓고 시원한 4차선 도로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1912년, 이곳은 허허벌판이었던 시절을 이겨내고 기차역이 세워졌으며, 이는 새로운 도시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리역으로 들어오며 중앙동은 주민들이 활발하게 오가는 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역주변에는 다양한 상업시설과 학교가 생겨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익산 중앙동은 다채로운 뉴스들이 넘쳐나는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인재를 키워낸 교육의 요람
특히, 익산 중앙동에는 교육기관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교육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1922년에 세워진 관립 이리농림학교는 전국 각지에서 수재들이 모여드는 경쟁의 장이 되었고, 지역 내 인재 양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차지했습니다. 이 학교 출신의 많은 인물들이 현재 익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하게 되면서, 교육 도시로서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역 주변의 번잡한 거리에서는 학생들이 오가며, 익산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자라나는 모습이 일상이 됐습니다.
중앙동의 전성기와 그 후
해방 이후 중앙동은 여전히 번창했습니다. 신귀백 소장은 중앙동을 지탱한 요소로 교통과 교육을 꼽으면서, 교육과 상업이 결합해 자연스럽게 번영을 가져왔음을 설명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처음으로 세워진 백화점과 함께 다양한 상업 시설들이 들어서면서도 서울에서 거둔 성과들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주민들은 학교와 은행이 거리 안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여 생활이 더욱 편리해졌고, 이리역에서는 기차를 이용한 효율적인 교통이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쇠퇴의 길로 접어든 중앙동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규 아파트 단지의 개발이 시작되고, 기차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갔습니다. 중앙동의 상업 지역은 점차 인구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도 붐볐던 거리들은 이젠 텅 빈 공간으로 변해버렸고, 중앙동의 활기가 사라지면서 도시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로서의 전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약정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산 중앙동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귀중한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는 축제를 통해 지역사회의 화합을 이끌고 있으며, 중앙정형외과의원 원장인 최태훈 원장은 그곳에서 여전히 진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앙동이 가진 고유의 매력은 세월과 변화 속에서도 잊히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좋은 시절’이 가고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익산 중앙동은 여전히 그곳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